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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면 詩(시) / 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날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좋은 시 모음 2022.12.04

목마와 숙녀 詩(시) /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

좋은 시 모음 2022.11.27

겨울 길목 자작詩(시) / 별아

겨울 길목 자작詩(시)  / 별아   잠시 비껴 서 있는 동안또 한 계절이 무르익는다겨울로 접어든 입동 지난후저무는 가을 저만치 두고멀어져 가네가을과 겨울을 잇는 징검다리한데 엮어 미련없이 깊어간다그리움과 이별하던그 순간 처럼소리나지 않는것들의 주변을둘러보게 한다 마음 시리게 하며다가오는 겨울 덧 없는 세월어차피 견뎌야할 혹독한 시련이라면끝내 견디리라 색 바랜 회색빛애잔함이 바람에 흩어진다

시인의 방 2022.11.13

들국화 자작詩(시) / 별아

산과 들길 스산한 가을날 새득한 갈바람 솔솔 불어 올적에 야윈 모습 흔들며 유혹하네 맨땅 비집고 살아 토양이 질박해 모두가 버려둔 모퉁이 고샅길가 발길에 채이기도 하고 밟히기도 했다 봄에 힘을 땅에서 빌리드니 여름내내 홍수와 태풍 가뭄과 폭염에서도 견디어주었네 웃는듯이 피는 들국화 겨우 찬 서리에서 피어나 위대한 생명력 온 몸으로 살아 남아 민초 닮은 꽃 요란스럽지도 않고 정갈하고나 치장하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지만 질박하고 가득한 향기 은은하게 바람결에 흩날리네 뭉근히 마음을 끌어당긴다 올망졸망 꽃망울 피우며 고운빛 물드는 시나브로 이슬처럼 영롱하구나 6nk2VqM8FjY

시인의 방 2022.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