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모음 36

박목월 / 가정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 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 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憐憫)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좋은 시 모음 2023.05.07

일터 / 김윤삼 ( 5월1일 근로자의 날,축원 드립니다.)

설 자리가 없어 살아 있는 것이 서투른 하루 초봄, 아침부터 내린 비는 저녁까지 하늘이 젖고 봄이 젖고 나무도 젖고 꽃이 젖습니다. 가난한 창틀에서 떨어지며 노래도 부릅니다 뼈마디 마디마다 눈물로 박혀 서투른 삶 머리 흔들어 털어버리려 가슴에 불을 지펴도 설 자리가 없습니다 불확실한 언어로 연탄불 갈고. 여섯 달 아들 재롱에 웃음이 흘러나와도 비가 오면 일거리 없어 돌아오는 삶은 허공에 발을 딛습니다. 소주잔 앞에서 노가다 이야기는 분주하게 떠돌고 노동기본법,근로기준법,이야기에 열불을 토해도 일용공의 하루는 가슴에 불씨만 남깁니다.

좋은 시 모음 2023.04.30

봄이오면 / 김동환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마음도 피어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 가주. 봄이 오면 하늘위에 종달새 우네 종달새 우는 곳에 내 마음도 울어 나물캐는 아가씨야 저소리 듣거든 새만말고 이 소리도 함께 들어주. 나는야 봄이 되면 그대 그리워 종달새 되어서 말 붙인다오 나는야 봄이 되면 그대 그리워 진달래 꽃이되어 웃어 본다오.

좋은 시 모음 2023.04.23